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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평론가의 라이브톡 글래스 해석


밑글은 1월21일 cgv  영화 글래스 라이브톡에서 이동진 평론가님이 하신말씀을 옮긴 글입니다. 이 포스팅의 출처는 디시인사이드 누벨바그 갤러리임을 먼저 밝힙니다.


-스포주의-


언브레이커블 3부작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글래스 3부작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본다.

언브레이커블에서조차 글래스는 탄생부터 나오지만 데이빗 던은 현재부터 설명해도 충분한 것으로 비중의 차이가 설명된다.


이 시리즈는 호불호가 갈린다. 일반적인 슈퍼히어로 영화와는 스스로가 히어로가 되거나 자각하는 발화점이 다르다.

보통의 경우 1/4~5 지점에서 발화하나 이 시리즈는 마지막 반전과 함께 스스로의 정체성을 깨달아 너무 낯설기 때문.

또한 샤말란은 스펙터클에 관심이 없다. 언브레이커블에서의 열차 사고 순간을 보여주지 않고 바로 뉴스 화면으로 넘어가는 것 등으로 샤말란의 성향을 알 수 있다.

데이빗 던이 판초우의만 입고 있고 모든 걸 가리고 있으며 비스트는 걍 상체를 다 벗고 있는 등의 심플한 대조를 이룬다.


또한 선역, 슈퍼히어로와 제일 가까워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데이빗 던이 너무 허무하고 초라하게 죽는 것이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글래스이고 전체적 시리즈 또한 1에서 말했듯 글래스가 중심이다.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너무 허무하게 죽는다고 생각됨)

그런데 이 글래스라는 인물은 명백한 테러리스트고 인간 그 자체를 목표로 삼으라는 일반적인 윤리 기준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집중하기 힘들 수 있고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이며,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엘리쟈의 윤리적 성향을 통한 정의실현이 아니고 그의 실존적 가치를 탐구해가는 과정이다.


핵심은, 샤말란은 외계인이나 유령 등의 소재를 끌어들여 자기 자신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언브레이커블에서도, 23 아이덴티티에서도. 그래서 마치 도를 닦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언브레이커블에서는 태어나자마자 뼈가 부러지는 고통에서 자신의 의미없음이라는 실존적 문제에 직면한 엘리쟈가

다크나이트의 배트맨과 조커처럼 데이빗 던이라는 대척점을 찾아내는 것을 통해 자신의 의미를 찾는 영화였다면,

글래스는 비스트라는 새로운 슈퍼 휴먼의 존재를 깨닫고 데이빗 던과의 대척점 관계가 무너지고 자신의 새로운 목표를 깨달아 이를 알리는 것이 주된 목표가 된다.

언브레이커블에서는 오로지 이기적인 목표를 추구하기만 했던 엘리쟈는 이 작품에 와서 이타적인 목표를 가지게 된다.


데이빗 던의 비중이 낮게 묘사되는 것은 그가 엘리 박사의 조직과 같은 마인드나 목표를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슈퍼히어로가 된 것을 자신과 아들에게만 알리며 슈퍼 휴먼이라는 존재의 등장으로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거부한다.

이는 엘리쟈가 추구하려는 목표와 충돌하며 엘리쟈와 데이빗은 서로가 독대하는 장면이 존재하지 않으며 일방적으로

엘리쟈가 안내방송 시스템을 이용하여 통보하기만 하는 것이다.

그나마 이 통보조차도 슈퍼 휴먼의 존재를 세간에 알린다는 계획을 위한 완전한 거짓이었으니.

엘리쟈는 비스트와 데이빗을 도구처럼 이용했지만 비스트와는 목표를 일치시킬 수 있었다.

특히나 엘리쟈가 비스트와 같이 다니는 것은 그와 같은 '진실'을 볼 줄 아는 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은유는 엘리쟈가 어릴 적 놀이기구를 탑승하는 씬에서 나타나는데, 자신의 옆에 곰과 사자(비스트)를 두고 놀이기구를 타면

안전할 거라는 생각으로 놀이기구를 타는 장면이 있다는 것. 그러나 곰과 사자가 놀이기구에서 떨어져나가고 결국 엘리쟈는 크게 다쳤다. 


밖에 나가지 못하며 고통을 받아 실존적 가치에 고민한 글래스는 마치 과학자와 같은 태도로 생각한다.

스스로의 실존에 의문을 두고 나와 같은 부서지기 쉬운 사람이 존재하면 절대 부러지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 가설을 입증하게 위해 열차 테러라는 실험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데이빗 던을 발견해내고 언브레이커블에서는 목표를 달성한다.

이 시리즈에서 진실을 본다는 화면을 뒤집는 것으로 나타난다. 언브레이커블에서 조셉 던이 아버지의 열차 사고 소식을 들을 때 소파에 뒤로 누워 tv를 보고 있었다.

또한 아버지가 실제 슈퍼히어로라는 걸 확신하는 순간은 데이빗이 벤치프레스를 하는 장면인데 조셉의 시각에서 데이빗은 거꾸로 보인다.

그리고 데이빗이 손길을 스쳐 범죄사실을 직감하는 능력이 진짜인지를 확인할 때의 엘리쟈 또한 계단에서 굴러떨어져서 총을 가진 사내의 모습을 보고 있다. 

특히 조셉 던과 엘리쟈의 성향의 유사함은 과학자적 사고에서 드러난다. 조셉은 자신이 아버지가 진짜 슈퍼히어로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데이빗에게 총을 겨누고 쏘려는 실험을 행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동진 본인 스스로는 정신병리학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고통이라는 것이 스스로를 고민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피해망상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큰 고통에 쳐해져 있기 때문에 스스로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어 살해 위협을 당하고 있다든지,

혹은 실제로는 굉장한 힘숨찐이라 망상을 한다든지인데 샤말란은 실제로 그들이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으로 글래스 3부작을 만들어냈다.

여기서도 데이빗 던의 비중이 줄어드는 이유가 글래스와 비스트가 겪었던 고통에 비해 데이빗 던이 겪은 고통의 깊이나 강도는 사실 그 정도가 떨어졌다.

그러나 어쨌든 그러한 히어로들이 탄생하게 되는 일이나 계기는 모두 고통에서 나왔다.


대충 기억나는 거 이 정도이고 엘리 박사의 조직이나 케이시 등에 관해서는 빼먹은 내용 너무 많은데 너무 길어지니 적당히 마무리한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얘기하자면 이동진이 실제로 샤말란을 만나면 묻고 싶은 게 9살 때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것.

샤말란의 영화에서는 글래스가 그렇듯,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진실을 보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언브레이커블에서 9살의 조셉 던이 아버지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그랬고 헤드윅의 정신연령이 9살인데

엘리 박사는 그렇게 영원히 9살인 헤드윅을 보고 안타깝다고 하는 반면 글래스는 정반대의 의견을 내며 그를 긍정했다는 거고

식스 센스에서도 콜의 나이는 9살이엇다카더라




출처 : http://m.dcinside.com/board/nouvellevague/21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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